김원섭의 아침을 여는 세상

[데일리메일]-김원섭 아침여는세상-유재하vs김현식‘11월1일’죽엄➬문화계,‘베르테르효과’아닌 희망인생

[데일리메일=편집인 김원섭]일부러 그랬는지

잊어 버렸는지

가방안 깊숙히

넣어두었다가

헤어지려고 할 때

그제서야

내게 주려고 쓴

편지를 꺼냈네

 

집으로 돌아와서

천천히 펴보니

예쁜 종이 위에

써내려간 글씨

한줄

한줄 또 한줄

새기면서

나의 거짓없는

마음을 띄웠네

 

나를 바라볼 때

눈물 짓나요

마주친 두 눈이

눈물겹나요

그럼

아무 말도 필요없이

서로를 믿어요

 

플루트와 재즈 트리오 형식의 발라드 우울한 편지는 봉준호 감독의 2003년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중요한 모티프로 사용됐던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

 

이 몸이 죽어가도

가슴에 맺힌 사연들은

내가 떠난 그 후에도

잊혀지지 않을거야

이 내 몸이 병들어도

못 다한 말 너무 많아

수북수북 쌓인 눈에

쌓인 눈에 잊혀질까

이 내 몸이 죽어가도

가슴에 맺힌 사연들은

내가 죽은 그 자리에

들꽃 한 송이로 피어날 거야

 

가수 김현식은 28년전 1990111일 서른둘 젊은 나이에 간경화로 세상을 떠난 지상에서 부른 마지막 노래

6집 음반 작업을 마무리하던 중 1990111일 오후 520분에 자신의 자택인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렉스 아파트에서 간경화로 인해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김현식 보다 3년 앞서 1987111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만 25세에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유재하의 31주기이기도 하다. 서태지, 조용필과 더불어 한국 가요계에 큰 영향을 끼친 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로 한국 발라드의 아버지로 불리 운다.

지난 1987년 신문의 한구석에 조그맣게 실렸던 젊고 유망한 작곡가 유재하의 죽음은 대중에게 그다지 알려지지 못했지만, 4년 후 김현식의 죽음과 더불어 한국 가요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장면 중 하나였다. 특히 대중들의 기호가 팝 음악에서 가요로 옮겨가기 시작한 1990년대 초의 시대적인 흐름을 읽어볼 때, 그가 살아 있었다면 왠지 우리 가요가 좀 더 뿌리 깊은 나무가 되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이들의 음악은 세대를 뛰어넘는 사랑을 받으며 지금도 우리 곁에 숨 쉬고 있다.

음악은 단순히 호소력 짙은 가창력 정도가 아니라 듣는 이로 하여금 영혼의 어떤 숭고한 상태에까지 이르게 한다. 거기엔 어떤 알 수 없는 신비한 마력과 힘, 혼이 느껴지고 충동들이 존재한다.

유재하, 김현식의 광기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모호한 지경으로 몰고 간다. 특히 김현식은 아랫배에 복수가 차고 피를 토하는 상황에서도 음악에 대한 식지 않은 열정으로 남긴 메모가 지상에서 부른 마지막 노래의 시다. 사실 시라기 보다는 노랫말이며, 사후 폭발적인 그의 인기에 편승한 상업적 소산으로 묶인 시집 속의 글이지만 무슨 상관인가. 그는 누구보다 훌륭한 시인이었으며 뮤지션이었다.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바람처럼 사라져간 그 자리에 영원토록 피어있을 들꽃 한 송이이며 살아있는 진행형의 전설이다. 삶과 음악을 반추하는 일은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유효하고 심연을 건드리며 일체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둘의 죽음은 소위 연예계 11월 괴담의 시발점이 됐다. 1995듀스멤버 김성재, 1999년 탤런트 김성찬, 2000년 탤런트 태민영, 2001년 개그맨 양종철, 2014년 탤런트 김자옥 등이 숨졌다.

대중의 사랑을 받던 연예인의 느닷없는 죽음은 그래서 유별난 것이다.

고통을 경유해 서로 다른 것이 연결됐을 때, 막혔던 것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질은 동질이 되고 끊어진 한쪽은 나의 한쪽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은 부정, 분노, 타협, 절망의 과정을 거쳐 수용하게 되는데 수용의 단계에 이르려면 충분히 애도하고 위로 받아야 한다. 삶에는 순탄한 비단길이 아니다. 크고 작은 일에 상처 받고 좌절하면서 헤쳐 나가는 것이 인생이다. 내일을 믿는 이에게 내일은 반드시 온다는 것을 되새기며 11월을 맞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