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섭의 아침을 여는 세상

[데일리메일]-김원섭 아침여는세상-【대한민국 법원의 날】김명수 사법부,양승태 엑소더스➬“자신 변덕 의해 지배되는 법원아닌 인간 먼저 연구하는 법원을”

[데일리메일=편집인 김원섭]명령하는 사람이 자신이 명령해야 할 내용에 관해 충분한 지식을 갖추고 또한 그에 복종하는 사람이 복종하는 일 자체에서 새로운 기쁨을 발견하게 할 수 있는 일이 내게 가능하다면, 나 스스로는 나 자신을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믿게 될 것이다.”

삼권 분립과 법치주의의 완성자 17세기 프랑스의 몽테스키외는 다양한 법과 습속 아래에서 살고 있는 구체적 인간을 거론하고 있다. 특히 몽테스키외는 최초로 흑인 노예무역을 비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8913일은 대한민국 사법부가 미군정으로부터 사법권을 이양 받아 사법주권을 회복한 날로서, 대한민국 사법부의 실질적인 설립을 기념하고, 사법부 독립의 의미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기념일 대한민국 법원의 날이다. 대법원은 우리나라 사법주권의 회복 과정과 사법부 독립에 대한 국가적인 자긍심을 일깨우고, 재판의 독립과 법치주의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기념식 등 각종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해방이후 통치자들은 나는 먼저 인간을 연구했다. 그리고 인간은 법과 습속의 무한한 다양성 속에서 다만 자신의 변덕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믿어 왔다.”는 몽테스키외를 말을 거역하고 대한민국의 법 체제를 농락해오다 추방, 암살, 자살, 탄핵 파면되는 흑 역사를 써왔다.

피청구인의 위헌·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고 보아야 한다(중략)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지난해 310일 전 국민적 관심 속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 사건에 대한 '탄핵 인용' 결정문을 낭독하였고 제18대 대통령 박근혜의 파면을 선고하였다.

그렇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12항처럼 대통령이 아닌 국민이 대한민국의 주인이고 주인공이다.

국민이 이겼다. 탄핵은 위기가 아닌 민주주의의 진화다. 대통령은 파면됐고, 대한민국은 장미대선에서 새 지도자를 선출하고 다시 완전한 민주공화국을 향한 긴 여정에 올랐다.

아니 지금 세계 곳곳에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며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상과 이념이 대립, 분단된 국가에서 무혈혁명은 꺼져가는 민주주의의 이념을 새롭게 정립하는 금자탑이라고 볼 수 있다. 보호주의로 회귀하는 세계는 지금 대한민국의 촛불로 다시 민주주의를 재 점화해했다.

이제 통치권자의 입만 바라보는 사법부가 권력의 시녀가 아닌 국민을 위한 법치주의를 재정립해야 한다. 이를 이끌 선장은 바로 대법원장이다.

그러나 지금 박근혜정권 시절 사법부는 마치 박정희 군사정권때의 시녀로 전락한 사실이 지금 속속 드러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대법원의 재판거래 의혹과 관련해 박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불가피해지고 있다. 주요 재판을 둘러싼 물밑 거래가 실행됐음을 뒷받침하는 진술과 증거가 속속 나오는 가운데 두 수장의 직접 개입 정황도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서 사법파동은 그동안 네 차례 있었다. 그때마다 사안은 달랐지만 큰 줄기에서 보면 사법민주화와 사법부 개혁을 바라는 목소리를 일선 판사들이 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1차 사법파동은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1년에 일어났다. 법원이 시국 사범에 잇달아 무죄를 판결하자 검찰이 특정 판사의 개인비리를 조사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이 사태의 발단이었다. 전국의 판사 150여명이 이 사건을 사법권 침해로 규정하여 집단사표를 제출하며 맞섰고 결국 해당 검사는 문책됐다.

2차 사법파동은 민주화 직후인 1988년에 일어났다. 노태우 대통령은 5공 군사정권이 임명한 대법원장 등 법원 수뇌부의 재임용을 고집했다. 그러자 소장 판사 330여명이 새로운 대법관 구성에 즈음한 우리들의 견해라는 성명을 발표하며 사법부 민주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결국 민주화의 물결을 거스를 수 없었던 노태우 정부는 당시 대법원장을 교체하지 않을 수 없었다.

3차 사법파동은 문민정부가 출범한 1993년 일어났다. 당시 법원 수뇌부가 내놓은 사법부 개혁안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소장 판사들이 사법부의 자기반성 없이 진정한 개혁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내용의 사법부 개혁에 관한 건의문을 발표한 것이다. 결국 이 사태는 대법원장의 사퇴로 마무리 됐다.

4차 사법파동은 노무현 정부 초기인 지난 2003년 법원이 기수와 서열을 중심으로 하는 구시대적 대법관 인사 구조 개혁을 거부하면서 불거졌다. 소장 판사들이 연판장을 돌리며 인사 개혁을 요구했고, 결국 이후 김영란 대전고법 부장판사가 최초의 여성 대법관에 임명되고 전효숙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헌법재판관에 임명되는 등 파격 인사를 부르는 계기가 됐다.

김 대법원장이 국민은 약자에게 편안하고 강자에게 준엄한 사법부를 원한다고 말한 것처럼 시민들은 정권에 휘둘리지 않는 사법부, 대법원장에 의해 통제당하지 않는 법관을 갈구하고 있다.

중국법가 한비자는 저울은 가벼움과 무거움을 있는 그대로 달수 있지만 움직인다면 바르게 달수 없다고 설파했다. 이는 죄와 벌이 균형을 이뤄야 법의 권위가 선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