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섭의 아침을 여는 세상

[데일리메일]-김원섭 아침여는세상-【스승의 날】“학교는 죽었다➨더 큰 문제는 회초리 楚撻(초달)야! 바보야”

[데일리메일=편집인 김원섭]내가 바다 남쪽에 집을 정하고 살려니 학도 한두 사람이 와서 나에게 배우기를 청했다. 이에 나는 그들의 스승이 되지 못할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한편, 또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 아무런 향방도 알 지 못할 뿐 아니라 더욱이 확고한 뜻이 없이 그저 아무렇게나 이것저것 묻고 보면 서로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도리어 남들의 조롱만 받을까 두렵게 생각되었다.”

이는 이씨조선시대 대표적인 학자 율곡 이이의 擊蒙要訣’(격몽요결)에 나오는 글귀로 격몽은 몽매한 자들을 교육한다는 의미이고 요결은 그 일의 중요한 비결이란 뜻이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들은 擊蒙要訣을 모태로 우리들을 교육시켜 G10국가 반열에 올라섰으며 전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부러워하는 교육 강국으로 키웠다.

515일 스승의 날은 세종대왕의 탄신일이다. 한글을 창제하여 글을 몰라 어두운 세상을 살던 백성들에게 광명을 찾게 해준 우리 민족의 고마우신 큰 승승을 기리기 위해 세종대왕의 탄신일로 정한 것이라고 한다.

620년이 지난 지금 스승의 날을 맞이해 대한민국의 교육계에는 이러한 교육의 가치관을 찾아 볼 수 없이 황폐화되었다.

자원이라곤 오로지 사람 밖에 가진 것이 없는 나라가 지난 40여년 사이에 선진국의 문턱까지라도 올라온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무엇보다 소 팔고 논 팔아 자식의 교육을 위해 혼신의 열정을 바친 한국의 맹모, 맹부들이 이루어 놓은 업적이 아닐 수 없다. 오늘 한국의 가능성은 바로 한국인의 뜨거운 교육열에 있다. 문제는 이 뜨거운 교육열을 어떻게 교육선진화로 승화시키느냐가 앞으로의 큰 과제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의 기둥인 교육현장이 흔들리고 있다. 학교현장에서는 폭력이 난무하고 이를 제어할 교사들은 뒷짐을 집고 있는 등 君師父一體(군사부일체)가 없어는 도가니 현장으로 전락했다.

어느 시대나 늘 그랬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우리사회야말로 스승의 길인 師道가 땅에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스승은 스승으로서의 자리를 잃어버렸고, 제자는 제자로서의 자리를 잃어버린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이야말로 스승은 스승으로서의 자리를 되찾고, 제자는 제자로서의 자리를 되찾아서 백년대계라고 할 수 있는 교육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노력이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그리고 사회전체의 구성원 사이에서 활발하게 일어나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 문화 중에 미풍양속이라고 할 수 있는 제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아야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을 표면적으로만 생각한다면 스승을 존경하여 스승 대하기를 부모와 같이 하며 스승에게는 늘 존경과 사랑으로 대하여야한다는 말로 이해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선생님 모시기를 극진히 하였고 지금도 다른 나라에 비해 볼 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스승에 대한 믿음과 존경의 문화는 그 정도와 깊이가 넓고 깊은 것으로 이해된다.

아니다. 지금은 학교는 죽어있다이것이 우리의 교육현실이다.

특히 학교폭력 근절!

일부 교사들은 학교폭력에 대해 자기 손에 때를 묵히지 않겠다는 몸보신으로 일관하고 있어 스승의 회초리는 지금 흥행하고 있는 영화 부러진 화살이 되어버렸다.

교육자이며 정치가였던 버트런드 러셀은 아이들 속에는 악마가 끼어들어 체벌을 가해야만 이 악마를 쫓아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주고 고운 자식 매 한대 더 때리라고 한 선조들의 가르침처럼 우리는 교육의 수단으로 때리는 회초리인 楚撻(초달)은 필수중의 필수였다. 때문에 서당에서 자기집 아이가 오랫동안 초달을 맞지 않으면 오히려 가르치는 스승을 찾아가 초달이 없음을 섭섭해 하는 게 관례이기도 했었다.

과거에서 문장이 뛰어나면 칭찬하는 말로 三十折楚(삼십절초)의 문장이니 혹은 五十折楚의 문장이니 하며 칭송을 했던 것이다. 서른 자루, 쉰 자루의 회초리가 꺾이도록 초달을 맞고서야 얻을 수 있는 글이라는 그런 뜻이다. 그래서 세월이 지나서 생각해 보면 우리 50대 세대에서는 가장 무섭게 종아리를 치셨던 선생님이 가장 그립고 고마운 은사님으로 기억에 남는지도 모른다.

다음으로 교사가 죽어야 학교 교육이 살아난다고 본다. 교사들은 진정으로 제자들을 세계 최고의 교육의 질로 키울 자긍심을 갖고 있는 지 의심스럽다. 학원으로 교육의 장을 빼앗기는 현실은 교사들의 질이 의심하는 것으로 교사들은 반성해야 한다.

지금은 스승은 공급자요 학생은 수요자다. 그래서 학생인 수요자가 스승인 공급자를 찾아야 하는 현실이다.

지금 교사들은 추락하고 있는 한국의 교육의 질을 높이는데 힘을 쏟아야 할 때다.

교사들은 왜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지 않고 있는가. 이러니깐 학생들이 사교육으로 달려가고 부모님들의 호주머니는 고갈되는 상태에서 갈수록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사교육의 조장은 곧 교사가 조장하는 것이다.

왜 학교에서 사설학원 강사같은 실력으로 가르치면 왜 고액을 들여 학원을 가겠는가. 교사들은 곧 직무유기에 해당하므로 이제 우리도 교사를 상대로 봉급을 차압해야 한다. 특히 개방화시대에 교육의 개방을 반대하는 교육의 현장이 우리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다. 교육은 동양과 서양이 없다.

옳은 학문이면 너나없이 받아 들여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질을 세계수준으로 높여야 한다. 지금 이웃인 중국을 보라. 교육의 질을 얼마나 높이고 있는가. 질이 낮은 교직자들은 퇴출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사들은 지금 구한말의 쇄국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바로 알고 지금 사회 암적 존재인 교육현장에 대해 과감한 매스를 가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 교육은 이제 영영 후진국으로 떨어지게 된다. 정부는 학생의 자질을 탓하기 전에 교사의 질을 탓하라. 정년이 보장된 철밥통의 교직에서 무슨 나라의 비전을 기대하겠는가. 주입식 교육으로 하루의 일정을 때우면 된다는 의식을 갖고 있는 한 우리나라의 교육질은 갈수록 떨어질 것이다.

학원 강사에게 학교의 장을 빼앗기는 현실에 대해 교사들은 깊은 반성을 해야 한다. 더 나아가 사대와 교대를 과감하게 폐지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일률적으로 교육받은 사대와 교대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교육 현실에서는 우리나라의 교육이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정부는 사대와 교대를 폐지와 함께 임용고시도 없애 학교가 자율적으로 교사를 채용해 학생들의 교육의 질을 높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육을 통해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한 한국은 선진사회로 도약하려면 인성이 밑바탕이 되는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만들어야한다. 가정.학교 모두에서 슬플 때 같이 울고 기쁠 때 함께 웃는 공감과 소통의 능력을 아이들에게 길러줘야 한다.

한국사회을 한단계 높이려면 가정,학교,사회가 모두 참여하는 인성교육이 절실하다. ‘스승의 날을 맞이해 君師父一體로 질 좋은 교육만이 대한민국을 살리는 길로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