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섭의 아침을 여는 세상

[데일리메일]-김원섭 아침여는세상-【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 31년】“‘미투 시발자’ 권인숙양을 아시나요?➺지금 어디에선가 문귀동이 권인숙양을 만들고 있다”

[데일리메일=편집인 김원섭]성(sex)은 언제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생물이 처음 지구상을 뛰놀게 된지 언 10억 년이 지났고, 21 세기 첨단과학은 끝을 모르고 발전하고 있지만, 성의 기원이 무엇인지는 아직 생물학의 가장 큰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몇년전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와 미 항공우주국의 제트추진연구소는, 성이 있기 이전의 생물을 시뮬레이션 하기 위해 디지털 생물체를 만들어서 성이 탄생하게 되는 과정을 연구했다.

연구에 따르면, 혜성과 소행성의 영향(방사능 등)으로 엄청난 유전적 돌연변이가 발생하였고 이로 인해서 지구상의 무성생식생물이 유성생식(암수가 교미를 해서 자손을 생산하는 방식)을 하도록 스트레스 환경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연구자인 클라우스 윌케박사에 따르면, 생물체가 혼돈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성적 자유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사실 성이 있기 이전의 생명체는 무성생식(암수가 만나지않고 혼자서 자손을 생산하는 방법)을 하면서 잘도 살아왔다.

지금도 많은 생물이 무성생식으로 대를 이어가고 있다. 감자는 씨눈 하나를 희생해서 새 감자를 만든다. 양파는 분열하고, 선인장은 자기 몸의 일부를 땅에 떨어뜨려서 종족을 번식한다.

동물의 경우, 해면과 바다 말미잘은 돌기(아체)를 통해서 번식한다. 편형동물의 경우, 몸을 둘로 자르면 잘려나간 반쪽의 한 끝에서 머리가 자라나도, 원래 몸통에서는 새 꼬리가 생겨난다.

인간의 영혼을 다루는 종교에는 성에 대한 두 가지 극단적인 태도가 있다. 인도와 티베트 등의 밀교에서는 섹스를 통하여 우주의 원리를 깨우칠 수 있고, 우주와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불교에서는 성을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의 하나로 보고, 그 욕망을 떨쳐버리기 위하여 정진한다. 누구에게 성은 욕망의 근원이고, 누구에게 성은 해탈의 과정이다. 현대사회에서도 성은 이중적인 태도로 찬양되거나 거부당한다. 대중문화와 광고는 성적인 이미지로 충만해 있지만, 실제 포르노는 배척당한다. 그래서 역사 속에서 성은 늘 이중적인 대접을 받아왔다.

이러한 고귀한 성이 지난 1988년 4월 9일 문귀동이라는 일개 경찰관에 의해 짓밟혀 구속됐다.

일명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당시 부천경찰서의 경장이던 문귀동이 조사과정에서 22세이던 대학생 권인숙을 성적으로 추행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공권력이 추악한 방법까지 동원하여 민주화운동을 탄압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으며, 권력에 굴복하여 불의를 용인한 사법부와 언론의 부도덕한 모습까지 보여줬다. 또한 군사정권의 언론 통제 수단 보도 지침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 이 사건을 통해서 드러났다.

조사계 문귀동 형사는 5 · 3 사태 관련자의 행방을 물으면서 뒷수갑이 채워져 저항할 수 없는 상태의 여성을 자신의 성기로 추행하면서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고문을 자행했다. 수치심에 괴로워하던 피해자는 결국 다른 여성들이 추악한 공권력에 의해 희생당하는 것을 막고자 조영래, 홍성우, 이상수 변호사 등의 도움을 얻어 1986년 7월 3일에 문귀동을 강제추행 혐의로 인천지검에 고소하며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공안 당국에 의해 같은 날 권인숙은 공문서변조 및 동행사, 사문서변조 및 동행사, 절도, 문서파손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으며, 다음날 문귀동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자신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느냐며 명예훼손 혐의로 권인숙을 인천지검에 맞고소했다. 이에 7월 5일에 권인숙의 변호인단 9명은 문귀동과 옥봉환 부천경찰서장 등 관련 경찰관 6명을 독직, 폭행 및 가혹행위 혐의로 고발했고, 문귀동은 권인숙을 무고혐의로 맞고소했다. 그런 와중에 변호인의 입을 통해 이 성고문 사건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공안 당국은 1986년 7월 17일에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권인숙을 “급진 좌파 사상에 물들고 성적도 불량한 가출자일 뿐”이라고 매도하였고, 언론은 “정부의 입장을 곤란하게 하기 위해서 성적 수치심까지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라고 여론을 호도하려 했다. 또한 수사 결과가 발표되던 날, 문화공보부는 부천서 성고문 사건을 어떻게 취재해야 하는지 각 언론기관에 다음과 같은 보도 지침을 하달하기도 하여, 전두환 군사 독재 정권이 언론을 어떻게 통제하였는지 보여주었다.

이 보도 지침은 1986년 9월 6일에 시사 월간지 ‘월간 말’ 특집호 〈보도지침―권력과 언론의 음모〉를 통해서 세상에 알려졌으며, 정부는 이를 폭로한 김태홍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사무국장, 신홍범 실행위원, 김주언 한국일보 기자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했다.

그러나 권력의 시녀 검찰은 권인숙의 고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에 대한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1986년 8월 25일에 대한변협은 법원에 재정신청을 냈으나 서울고등법원은 같은해 10월 31일 “이유없다”라며 기각했다.

그로 인해 권인숙은 1986년 12월 1일에 인천지법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 이에 불복하여 항소했다. 항소심에서도 피해자의 법정 진술을 재판장이 중도에 막는 등 불공정한 재판이 계속되었다.

결국 6월 항쟁 이후인 1988년 2월 9일이 되어서야 대법원은 재정신청을 받아들였고, 문귀동은 1988년 4월 9일 구속되어 6월에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사건 발생 3년 만의 일이었다.

이 사건은 군사독재정권의 부도덕성과 인권 유린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다. 경찰뿐 아니라 사법부와 언론까지 독재 정권의 시녀 노릇을 했음이 국내외에 밝혀졌다.

그동안 민주화 진영에서도 소외되었던 여성인권 문제가 진지하게 논의되는 계기가 되었다. 보도 지침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진정한 언론의 자유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피해자인 권인숙씨는 명지대 교수로 재직하며 여성문제 전문가로 활동중이다. 그는 지난 2007년 4월 21년만에 언론을 통해 성고문 사건의 수사과정, 13개월의 감옥 생활, 그리고 출소 후 피해의식까지 겪었던 심적 고통 등을 담담하게 풀어놓았다. 법정에서 겪었던 모욕과 양심수들이 모여 있던 감옥생활 등 밝혀지지 않은 뒷이야기, 출소 후 권양에서 권인숙으로 이름을 밝힌 사연과 정치권의 러브콜, 그리고 몇 년 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검사장과의 쇼 같은 만남을 제안받은 일화까지 모든 이야기를 공개했다.

그는 “그 사건(성고문 사건)을 되짚는 건 울지 않고서는 못한다. 잘 이겨냈든 안 이겨냈든 별거 아닌 일로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그런 부분은 아니다”라는 말로 여전한 심적 고통을 고백하면서도 “항상 좀 어두운 어떤 이상한 투사의 이미지를 벗어나고 싶다. 사람들이 그렇게 보는 게 너무 싫다”고 이야기했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아니 운동권이 아닌 일반 특히 미성년자를 상대로 성인들의 성적 학대가 비일비재하고 일어나고 있다. 문화계에 이어 검찰조직까지 파고든 성추행등이 미투로 확산일로이다.

첫 당사자인 권 교수가 지금 검찰에서 벌어진 성추행위에 대한 법무부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권 위원장은 “미투 운동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 만연해 온 권력형 성폭력 문제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한다.

여하튼, 지금 우리에겐 성의 자유가 있지만 지금 우리사회에서는 온전하게 성적 소수자의 자유로운 자기표현과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다수 관념에 의해 제한당하는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