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섭의 아침을 여는 세상

[데일리메일]-김원섭 아침여는세상-【제주 4·3 추념일 70주기】‘모두가 희생자이기에 모두 용서한다’➫“봄이 온다”

[데일리메일=편집인 김원섭]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과거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꺼내 어떻게 들려줄지는 온전히 지금 사람들의 몫이다

43일 역사학자 EH 카의 명언이 뇌리 속에 떠올랐다.

“19473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4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9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

올해는 4·3발발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당시 갓난아기가 어느덧 일흔 살이 되었고, 열 살 난 어린이들이 여든 살 노인이 되었다. 아버지와 형을 잃은 열 살 안팎의 어린 소년·소녀들은 군인과 경찰에 의해 깡그리 불타 폐허로 변해 버린 마을을 고사리같이 여린 손으로 다시 일으켜 세웠고, 이토록 아름답게 제주도를 복원시켰다. 이는 기적적인 일이며 존경받아 마땅한 일이다.

현대사의 비극으로 불려온 제주 4·3사건(1948)이 발생 66년 만인 지난 2014년에 ‘4·3 희생자 추념일로 명명되고 국가기념일로 공식 지정됐다.

, 바람, 여자라는 삼다 제주도가 4.3삼풍으로 인한 시체, , 눈물의 삼다로 변했다.

4.3은 세계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갈라지는 세계분단의 과정에서 발생한 경계국가 한국의 대비극이다. 특히 세계분단과 한국 분단과정에서 제주는 중앙에서 가정 먼 이중경계지역이었다.

지난 200310월 진보 성향의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4·3 사건을 국가권력에 의한 대규모 희생이었다고 인정하며 사과한데 이어 2006년 민간 주도 위령제에 현직 대통령으로 처음 참석했다. 보수 성향의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중 위령제에 참석하지 않았다.

제주사람들에게 4.3 사건은 되살리고 싶지 않은 처절한 비극적 역사다. 역사적으로 제주사람들은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착취·수탈구조와 불의에 맞서는 저항의 역사를 이어왔다. 그러한 역사를 통해 자존심을 지켜왔지만 4.3으로 모든 것을 상실하였다. 4.3 이후 6·25를 거치면서 권위주의적 반공체제가 강화되면서 제주사람들은 이중 삼중의 고통을 당해왔다.

제주 4·3학살피해자 가족과 시민단체에서 줄곧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을 요구하였으나 역대 정부는 이를 무시하였고, 오히려 금기시하였다. 이 사건을 다룬 소설인 순이 삼촌의 경우 책은 금서가 되고 작가 현기영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19981123일 김대중 대통령이 CNN과의 인터뷰에서 제주 4·3은 공산폭동이지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많으니 진실을 밝혀 누명을 벗겨줘야 한다.”는 발언이 있었고, 19991226일 국회에서 제주4·3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이 사건과 관련된 희생자와 그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줌으로써 인권신장과 민주발전 및 국민화합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법인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되고, 2000112일 제정 공포되면서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가 착수되었다. 2003329일 조사위원회에서 보고서를 확정하였고 조사위원회의 의견에 따라 20031031일 노무현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국가권력에 의해 대규모 희생이 이뤄졌음을 인정하고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를 하였다.

그러나 일부 극우단체들은 아직도 4·3항쟁을 남로당계열의 좌익세력들이 주도하여 인민군이 주민들을 선동해 일으킨 폭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근혜정권에서는 4·3특별법과 4·3위원회를 폐지하려고 몇 차례나 시도했고, 이미 희생자로 결정된 분들 중 일부에 대해 그 결정을 취소시키려 했다. 극우세력들은 이런 분위기를 틈타 2009년부터 진상조사보고서를 파기하고 희생자 결정을 취소하라는 취지의 헌법소원심판, 행정소송, 국가소송을 제기했다.

이제 이 같은 보.혁 갈등은 시대정신에 맞게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보수정권인 박근혜 정부에서도 4.3사건을 제주 4.3 기념(희생자 추념)일로 입법 예고하지 않았는가?

특히 박근혜 전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대통령은 한때 좌익이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형 박상희는 남조선로동당으로 활동한 공산주의자였다고 한다. 박상희는 광복 이듬해 1946년 대구 10월 폭동 핵심자로 총상, 사망했다. 동생인 박정희 전대통령도 형의 죽음을 계기로 좌로 기울었다고 한다.

194810월 국방군 내 좌익계열의 군인들이 제주4.3사건 진압을 거부하고 일으킨 여수·순천사건이 일어나자 육군 정보사령부 작전참모로 배속되었다. 그해 박정희는 당시 국군 내부 남로당원을 색출하자 발각되어 체포되었으며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를 수사했던 김창룡과장(대위)은 박정희와 조선경비대 2기 동기생이다. 김창룡은 수사책임자 김안일 과장에게 박정희 구명을 건의했고 김창룡은 백선엽 윤군 정보국장에게 박정희 재 취조를 부탁했다. 백선엽 회고록에 의하면 그 자리에서 박정희는 자신에게 도와달라 부탁했고, 이에 백선엽은 그러기로 약속했다.

이후 김창룡과장의 신문에서 박정희는 자술서를 썼고, 그 속에 군대내부 남로당 조직책을 모두 폭로한다.

4.3희생자 위령비 모두가 희생자이기에 모두 용서한다는 절대 용서의 비문앞에선 세계 종교와 사상의 근본 가르침인 사랑과 관용, 치유와 회복을 현실에서체험하며 무릎을 꿇는다.

그래서 4·3 기념일은 우리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로, 반드시 피해자들과 유족들의 아픔을 해소하고 국민 통합으로 나가는 계기가 돼야 한다. 이와 함께 우리가 4.3기념일의 역사관을 바로 세워야 일본의 역사왜곡에도 대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