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섭의 아침을 여는 세상

[데일리메일]-김원섭 아침여는세상-세월호침몰 당일 박근혜 7시간➡7시간30분 미스터리,‘그것이 알고싶다’➨國可滅而史不可滅(국가멸이사불가멸)

[데일리메일=편집인 김원섭]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당일인 416일 박 대통령의 7시간 동안 소재가 파악되지 않았던 사실이 불거져 정권이 통째로 흔들리는 사태가 됐다. 증권가 관계자에 따르면 그것은 박 대통령과 남성의 관계에 관한 것으로 상대는 대통령의 모체(母体), 새누리당의 측근으로 당시는 유부남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대통령과 남자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 구석구석 여기저기에서 한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진위를 떠나서 이런 상황을 대통령의 현재 상황과 연관해 생각하고 있고 지금은 그런 이성적인 판단이 무너져 내렸다. 박 대통령이 국정 운영에서 높은 지지를 유지하고 있었다면 소문 자체가 언급되지 못하였을 것이지만, 대통령 개인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에 모든 소문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1483일 산케이신문 가토 서울 지국장이 쓴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침몰 당일, 행방불명누구와 만났을까?’라는 제목의 기사의 진실여부가 3년만에 진실로 드러날지 세간의 주목을 다시 받게 됐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2014416일 세월호 사고 당일 첫 대통령보고 시간을 청와대 상황일지에서 조작하고,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도 불법 변경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12일 브리핑을 통해 지난 27일 국가위기관리센터 내 캐비닛에서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을 불법 변경한 자료가 나왔고, 11일에는 안보실 공유 폴더 전산 파일에서 세월호 사고 당일 세월호 상황보고 일지를 사후에 조작한 정황이 담긴 파일 자료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특히 20144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과 관련한 7시간 의혹이 여전히 풀리지 않는 가운데, 당일 오전 롯데호텔에서 박 대통령이 시술을 받았다는 의혹의 실타래가 풀리게 됐다. 그 당시 일부 언론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롯데호텔 36층에서 김영재 씨가 직접 시술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처음 시술이 계획되어 있었으나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는 전화를 받고 시술을 하지 않으려다가 다시 연락이 와 모두 무마됐다는 보고를 받은 뒤에 시술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제보자에 따르면 시간은 총 1시간 가량이고, 1.4km 떨어진 청와대로 돌아가서 관저에서 쉬다가 시술에 불편함을 느껴 가글을 가져오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청와대가 제시한 최초 보고시간이 2014416일 오전 930분이었는데 6개월 뒤 이를 오전 10시로 30분 늦춰 보고서를 재작성했다는 것이다. 이와 별개로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 내 캐비닛에서 전 정부 청와대가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을 무단으로 개정변경한 자료도 나왔다고 한다. 박근혜 청와대가 세월호 침몰에 부실 대응한 책임을 면하기 위해 사후에 조직적으로 기록을 조작하고, 법규를 무단 수정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당시 정부가 좀 더 신속하고 현명하게 대처했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도 있었을 비극이었다. 당일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에 머물며 상황을 보고했던 김장수 안보실장은 책임론이 번지자 423재난의 컨트롤타워는 국가안보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고,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은 7“(재난의) 최종적인 지휘본부는 안전행정부(현 행정안전부) 장관이 본부장이 되는 중앙재난대책본부장이라고 국회에 보고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이 거짓 증언을 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김관진 전 안보실장이 지침까지 무단 변경했다면 묵과할 수 없는 범죄다. 법제처장 심사 등 절차 없이 기존 대통령 훈령에 빨간 줄을 긋고 수정한 지침을 내려보냈다면 국가 법체계조차 무시한 제도 조작이다.

대통령이 사라졌다. 비서실장도, 경호실도 모른다. 그녀가 행방불명됐던 시간은 단 7시간30. 그 사이 476명이 탑승한 여객선이 침몰하는 지상 최대의 참사를 맞이한 대한민국호는 선장 없이 패닉 상태에 빠져 있었고, 수학여행 간 고등학생들을 포함해 총 294명이 사망하고 10명이 실종되기에 이르렀다.

기록 조작은 왕조시대의 국왕도 감히 하지 못했다.

길현은 자신을 말리는 수학에게 난 평생 감히 내가 이런 곳에 서게 될 줄은 몰랐어. 나는 이나라 조선 밖에 있는 사람이었 거든이라며 지금은 아니야. 나도 이나라 조선의 일부야. 쉽게 바스라지지 않아. 나한테 이런 꿈 같은 삶을 안겨주신 게 전하일세 . 전하를 져버릴 수 없어라고 임금을 향한 충성을 맹세했다. 그리고 그는 조의제문을 찾아 연산군에게 전달했다.

이에 연산군은 세조 대왕께 불충한 말을 올린 김일손의 사초를 알게됐다. 이어 연산군은 세조가 왕위를 찬탈한 대역죄인이라 말하는 조의제문을 지은 자가 김종직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일당들을 형장 심문하라고 명했다. 홍길동이 계획한 대로 연산군은 충원군을 의심했고, 그를 국문하라 명했다. 그리하여 충원군은 대역죄인으로 잡혀들어가게 됐다.올초 인기리에 방영된 역적에 나오는 대사로 사초로 인해 홍길동이 충원군 이정을 대역죄인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실록은 만년이후를 기다리는 책이다국조보감 서문에 기록된 정조의 글처럼 조선왕조 25427년간의 기록 조선왕조실록’ 189388책이 존속해 세계문화재로 등록된 것이다.

‘7시간 아닌 7시간 30’, 정말 그것이 알고 싶다이다.

國可滅而史不可滅(국가멸이사불가멸:나라는 망해도 역사는 인멸될 수 없다)는 각오로 청와대가 발표한 정황과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관련자를 一罰百戒해야 한다.